대학생활 2

신병 훈련소를 퇴소하는 신병들을 위한 격려사. 1994. 11. 11.

노고지리이해식 2006. 7. 31. 12:01

   

아들의 신병훈련소 수료식

 

나의 아들 구(九)가 육군에 자원 입대하여 신병 훈련을 마칠 즈음, 훈련소에서는 신병 수료식에서 낭독할 격려사를 다섯 신병의 가정에 의뢰하였는데 이 격려사는 그 중에서 뽑힌 것이다. 낭독은 신병의 어머니가 한복을 입어야 한다는 부대 요청에 따라서 우리는 한복을 준비해갔다. 수료식 직후 여러 우수한 신병들과 격려사가 선택된 구는 5일간의 포상휴가를 받아서 즉석에서 아들과 함께 귀가한 적이 있다. 당시 부대 사령관과 장병들의 친절에 감사한다. 

 

격 려 사


오늘 건장하고 용기 있는 여러분의 신병수료식에서 격려사의 자리에 서게 됨을 참으로 기쁘게 여기는 바입니다. 태양처럼 젊음이 빛나는 여러분을 대하고 보니 저의 신병시절 「사나이로 태어나서」라는 군가를 부르며 구보하던 일과 여러 가지 야간훈련의 기억들이 되살아나서 마치 여러분처럼 다시 젊어지는 느낌을 감출 수 없음은 이 수료식에 참석하신 다른 부형들께서도 마찬가지리라 믿습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지만 나라 지키는 일보다 첫 째 가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이 둘만 모여도 그것을 사회라 합니다. 따라서 나라를 지키고자 많은 젊은이들이 모인 이곳은 말 그대로 군대사회입니다.

군대사회란 흔히 말 하듯이 여러분이 입대하기 전의 일반사회와 결코 동떨어진 사회가 아니라 아주 긴밀한 교류와 유대로 맺어진 사회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신병수료식도 그러한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군(軍)이란 글자가 의미 하듯이 일치단결과 엄격한 군율이 특성이지만 이것을 뒤집어 보면 일반사회의 협동정신이나 예절과 다름이 없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가정의 따뜻한 품을 떠나서 여러분 인생의 일부분을 협동과 예절을 배우는 데 바치는 것은 참으로 값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자기를 지킴으로써 국가를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제대한 후의 성숙된 사회생활을 하는 것과도 알게 모르게 관련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아들이 신체검사에서 1급 판정을 받기 원했지만 시력관계로 2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간에서 멈칫거리는 사람들과는 달리 입대는 당연하다는 듯이 스스로 자원하여 군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입대하는 아들의 뒤에서 눈물을 감출 수 없는 대신 소리 없는 뜨거운 박수를 오랫동안 보냈답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저의 아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흠이 없는 대한민국의 남자임이 여실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디 제 아들뿐이겠습니까?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은 모두 다부진 신체 속에 알차게 영글은 정신을 담고 있는 진정한 용사요 참다운 젊은이들입니다.

훈련 때의 땀 한 방울은 전쟁 때의 피 한 방울과 같다는 신병훈련소의 격언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이 말은 비단 군대뿐만 아니라 일반사회에서도 참으로 적절하게 사용되는 말입니다. 사람이 사노라면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고 군대는 그런 확률이 높은 곳입니다. 이럴 때 신병훈련 때의 땀 한 방울을 흘린 대가가 치러지는 것이고 여러분이 제대할 때까지의 군대생활을 무사히 보낼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또 이 말을 바꾸어 보면 어디서나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은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이런 뜻에서 지난 6주 동안 땀을 아끼지 않은 신병 여러분과 부대의 기간장병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이곳에서는 건장하게 보여도 부모들한테는 아직 어린 아들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처럼 군대생활을 경험한 부모들일지라도 집 떠난 자식 생각에 여러 날 잠을 설치고 노심초사 합니다. 이런 부모의 심정을 안심시켜 드리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요?

고생 끝에 낙이란 말도 있고 젊은 때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젊음은 무쇠라도 녹일 수 있습니다. 멀리 나의 사전엔 불가능이 없다는 나폴레옹의 말이 아니더라도 지금 여러분에게는 인생의 모든 일이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여러분의 젊음과 용기가 부러운 것이 저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인생 전체에 비추어 보면 군대의 복무기간이 그다지 긴 세월은 아닙니다. 오로지 같은 시간인데도 정해진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심리적으로 길게 느껴질 따름입니다. 군문을 거쳤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생활의 귀중한 경험을 하나 더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부모를 안심시켜 드리는 길은 군대생활을 인내로써 충실하게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처음에 일반사회와 군대사회라는 말을 했습니다만 어느 사회든지 그것의 동양적인 의미는 선조를 예절로써 받드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회의 서양적인 본뜻은 친구를 사귀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이 군대에 복무하는 동안 비록 규율일지라도 예절로써 상관을 받들고 또 여러분이 상관이 되거든 부하를 사랑하는 도량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또 친구로서 전우를 사귀어 돈독한 전우애로 뭉쳐진 대한민국의 당당한 군인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나라를 지키고 나아가 여러분이 제대한 후의 사회생활에서도 값진 밑거름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1994. 11. 11.

 

                                                                                   신병 이구의 아버지 이해식

 

 

아들 구의 군복무 시절